코이네설교

[사도행전24장] 미결인생 벨릭스

코이네 2015. 4. 2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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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결 인생 벨릭스

본문 : 사도행전 24장 1-27

2015.4.26.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미생의 명대사

 

예전에 인기리에 끝난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원래 만화였는데 이를 드라마로 만든 것입니다. 이 미생의 주인공은 장그래라는 한 회사의 신입사원인데, 프로바둑기사를 포기하고 대기업의 인턴직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회사생활과 바둑이 일맥상통하는 것을 알고 자신의 처한 상황을 바둑을 두는 자세로 하나씩 헤쳐 나가는 내용입니다. ‘미생’이란 바둑에서 아직 완전한 집으로 완성되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죽었다고도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상태 이를 미생이라고 합니다. 미생을 완생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바둑의 기술이고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면 이 사회에서 완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턴직원이 장그래도 그렇고 심지어 그 회사의 사장도 완생이라 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엔 참 많은 명대사들이 있어서 특히 회사원들의 심금을 울렸는데, 그 중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바둑을 두고 있다. 원 없이 자기가 구상한 최선의 수로 판을 짜고 싶을 것이다. 최선의 수로 판을 짠 사람은 결과에 비교적 만족할 수 있지만, 허겁지겁 상대의 수를 따라두다 망친 사람은 변명조차 할 입이 없다.”

 

2. 벨릭스를 찾아온 유대인들

 

우린 계속해서 매 주일마다 사도행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다. 지난주에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몄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이들의 음모를 이용해 바울을 안전하게 보호하셨고, 마침내 유대인들의 음모는 실패로 돌아가되었습니다.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울이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섭리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협력시켜서 선이 되게 하시는 분이신 것을 바울의 음모 사건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시 총독을 찾아와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그것도 로마인들의 재판 방식에 익숙한 더둘로라고 하는 변호사를 대동해서 바울의 유죄를 이끌어낼 수밖에 없는 죄명으로 말입니다. 그들이 제기한 바울의 죄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소요선동죄, 둘째는 이단죄, 셋째는 성전모독죄였습니다.

 

첫째 죄명인 소요죄는 곧 로마에 대한 반란혐의로 고소하는 것이라 로마 총독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죄명입니다. 둘째와 셋째는 로마의 재판정이 아니라 유대의 재판정에서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죄이기에 지금 총독이 바울을 구금하고 있지 않다면 유대법정에서 당연히 유죄판결이 내려질 죄이니 당장 자기들 손에 넘겨달라는 것입니다.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고소를 들었고, 바울에게 변론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의 고소에 대해 자신의 변론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변론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음모에 의해 억울한 구금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감정이 앞서기 마련이고, 그러면 답변도 거칠하게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질 않습니다. 그는 공손하게 답변을 하며, 그는 간결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말합니다. 바울의 이런 답변에 유대인들은 더 이상 바울을 고소할 명분을 찾지 못해 물러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석방되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벨릭스는 당시 유대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라 무죄방면은 하지 못했지만, 바울을 일정한 자유를 보장하는 구금상태로 두었습니다.

 

3. 미결인생 벨릭스

 

그런데 여기 참 안타까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총독 벨릭스입니다. 벨릭스는 A.D. 52년에 유대 총독에 임명되어 8년간 유대지방을 다스린 사람입니다. 그는 노예출신이지만 황제와 친한 형의 도움으로 자유민의 신분을 얻었고, 마침내 유대의 총독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보통 어린시절이 불우하면 나중에 성공해서는 그런 불우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인물도 있지만, 많은 경우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벨릭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벨릭스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자까지 동원할 정도로 잔인한 인물이었으며, 또한 총독의 지위를 이용하여 뇌물과 여자를 탐하였던 탐욕스런 인물이었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벨릭스가 '노예의 마음을 가지고 왕의 권세를 휘둘렀던 인물'이었다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세 명의 아내를 두었는데, 그 중 하나가 헤롯왕의 손녀인 드루실라입니다. 드루실라는 아주 매혹적이고 발랄한 미모로 유명했고, 시리아의 작은 왕국의 왕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벨릭스는 드루실라를 처음 본 순간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마술사 시몬을 보내어 그녀를 설득하였고, 당시 16세이던 드루실라는 자신의 남편과 이혼하여 벨릭스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벨릭스는 유대인들이 벨릭스의 학정에 대항하여 시위를 하자 무자비하게 이들을 진압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피의 대학살'이라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대인 지도자들이 로마황제에게 이 사실을 고소했습니다. 그 때문에 벨릭스는 마침내 총독자리에서 물러나 로마로 소환당했고, 로마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유대인들의 눈치를 봐야했습니다. 그리고 임기를 끝내고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도 바울을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벨릭스는 형의 도움으로 로마로 소환된 이후에 큰 형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베수비오라고 곳으로 추방되었고, 그곳에서 머물다가 화산의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 아래 결국 아들과 함께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살다간 벨릭스라는 사람. 저는 이 사람의 인생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미결인생’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왜 미결인생일까?

 

첫째는 그는 자신의 임무를 미결로 남겼습니다.

 

알다시피 벨릭스는 유대지방을 다스려야 할 총독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과 영달에만 관심이 있었지 훌륭한 총독이 되려는 노력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소요가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않고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소요를 진압했습니다. 그 때문에 유대인들의 원성은 더욱 커져갔고, 이 때문에 고소당해서 로마로 소환되었습니다. 고소당한 이후 그는 태도를 바꾸어 유대인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총독으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유대인들 눈치보기에 급급해서 뒤로 미루었고, 스스로 죄가 없다고 인정한 바울을 2년이상 구금한 상태로 두고 유대를 떠났습니다. 때문에 그는 총독으로서 실격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둘째 회개를 미결로 남겼습니다.

 

벨릭스 총독은 옥에 같여 있는 바울을 자주 불러서 면담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에게 의와 절제에 관한 것과 장차 올 심판에 관해서 강론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벨릭스는 엄청나게 두려워하고 또 고뇌에 빠졌습니다.

 

그는 노예에서 벗어나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인물입니다. 때로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자도 보내었고,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그리고 뇌물을 받는데 혈안이 되었고, 여색을 탐했습니다. 유부녀를 유혹하여 한 가정을 파탄내었고, 또 그 여인과 결혼하여 해서는 안되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 모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에게 의와 절제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강론했을 때 두려웠습니다. 그 때 그는 회개해야 할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회개해야 할 것을 미루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전하는 바울에게 "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언제나 그렇게 미룰 뿐이었습니다. 무려 바울과 2년을 같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누구입니까? 세계 최고의 전도자이며, 주님의 사도가 아닙니까? 그 곁에 자기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을 두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미루었고, 마침내 회개하지 못한 채 유대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왜 그리 회개하는 것을 미루었을까요? 아마 그는 나만 그런 죄인인가? 나보다 더한 나쁜 놈들도 잘만 사는데 내가 굳이 회개해야하는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기에는 죄가 너무 커서 과연 내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을 것이며, 또 회개함으로 받게 될 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 회개하지 않아도 뭔가 달리 방법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것이 회개하지 않는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그는 회개해야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인생을 새롭게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이것을 미결로 남겨두다 보니 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을 놓치고 말았고, 인생의 마지막을 아주 비참하게 끝내야 했던 것입니다.

 

셋째, 인생의 구원을 미결로 남겼습니다.

 

그는 바울을 자주 불렀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울이 전하는 말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바울에게 뇌물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왔을 때 기근에 죽어가는 예루살렘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온 교회가 헌금한 거금을 들고 왔습니다. 이 때문에 총독은 바울이 큰 부자였을 것으로 생각하였고, 또 바울이 들고 온 그 구제금의 일부를 뇌물로 받을 수 있을까 싶은 기대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타락한 관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의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돈에 대해 갖고 있는 관심만큼 그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았다면, 그는 이 세상의 금은보화와 부귀영화로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과 영광을 얻었을 것입니다. 어리석게도 그는 세상의 것에 너무 골몰하다보니 가장 중요한 것, 가장 귀중한 것, 구원을 뒤로 미루어버렸습니다. 그는 끝내 완생의 길을 포기한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혹 이런 미결인생을 살고 있지 않는지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먼저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나는 눈물로 회개해야 할 순간을 미루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내 영혼은 날마다 새로워지며, 더욱 알차게 성장하고 있는가? 더 이상 미생이 아니라 완생이 되어 주님께 영광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원합니다. (*)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