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변화산에서 해같이 빛나는 주님을 경험한 제자들

코이네 2015. 5. 6.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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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에서 해같이 빛나다

본문/마17:1-8

2015.5.6. 소토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주님께서 제자들 중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한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변형되셔서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모세와 엘리야가 와서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그 산 위에서 천국의 모습을 보았으며, 예수님의 참 실체를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신비한 세계를 경험한 이 산을 두고 일반적으로 변화산이라고 합니다.

 

변화산에 대해서는 갈릴리에 있는 해발 540m의 다볼산이라는 주장과 가이샤랴 빌립보와 가까운 해발 2,700m의 헐몬산이라고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다볼산을 변화산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주후 326년에 다볼산 꼭대기 정상에 예배당을 세웠고, 7세기까지 이곳 다볼산 정상에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의 이름으로 바쳐진 세계의 성전이 건립되기도 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건물들은 모슬렘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19세기 말 희랍정교회에 의하여 예배당과 수도원이 세워졌고, 정상에는 수리아 양식의 교회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변화산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주님께서 왜 제자들과 함께 그 산에 올라가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왜 그곳에 제자들과 함께 오르셔서 그 놀라운 모습을 보이셨을까?

 

이를 알려면 이 변화산 사건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온전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신 후 당신이 곧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언하자 베드로가 만류하다가 혼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죽을 것을 예언하셨을 때 제자들은 실망하고, 또 두려워했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향해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는 살 것이라 하시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것을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천국의 실체와 죽음에서 부활하신 모습을 미리 보여 주셔서 그들의 믿음을 바로 세워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변화된 주님의 모습을 보며 믿음의 깊은 세계, 천국과 예수님의 실체를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변화되시는 그 순간이 얼마나 황홀하였으면, 너무 너무 좋아서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라고 말합니다. 즉 그냥 여기가 너무 좋으니 이렇게 우리 살 집을 짓고 여기서 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또 구름이 몰려와서 그 위를 덮어가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천국과 예수님의 실체를 경험하였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까지 듣는 정말 놀랍고 신비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베드로 사도는 일생 잊을 수 없었으며, 그의 생애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베드로후서 1:6 하반적 이하 17절을 보면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지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욥도 그가 주님을 실제로 만났을 때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고 고백하였고,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베드로와 그 제자들은 주님의 실체, 천국의 실체, 신앙의 신비를 경험하면서 더 깊은 믿음의 자리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1. 이런 신앙의 깊은 체험은 기도할 때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매일 새벽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였고, 틈날 때마다 기도하셨고, 사역을 할 때도 기도하면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기도는 생활이요, 삶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깊은 기도는 하나님의 실체를 경험하게 해줍니다.

 

2. 신앙의 깊은 세계는 변화하는 세계입니다.

이 산위에서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었는데 해같이 빛났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본체를 제자들이 본 것입니다. 정말 밝고 맑고 깨끗한 모습. 죄의 얼룩이 전혀 없는 모습, 곧 우리가 변화해 닮아가야 할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는 사람의 외모와 인격 그 속사람이 일체가 되어 변화되어진 모습입니다.

 

3. 신앙의 깊은 세계의 끝은 오직 예수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참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했지만 그 끝에는 오직 예수님만 그 앞에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깊은 신앙의 끝은 오직 내 인생에 예수님만이 남게 됩니다. 예수님만 보이는 것입니다.

 

4. 신앙의 깊은 세계는 죄 많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주님의 제자들이 황홀경에 취해 있을 때 주님은 그들을 데리고 다시 산을 내려왔습니다. 내려오자마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귀신이 들린 아이와 그 아버지였습니다. 이처럼 깊은 신앙은 단지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깊은 신앙은 세상을 등지고 신비의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신비의 산에 올라가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 경험을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북극을 발견한 탐험가 난센이 북극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타고 왔던 배가 바다 속에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그 배를 찾기 위해 물의 깊이를 측량하려고 했지만 줄이 도무지 그 바닥에 닿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일기에 줄의 깊이를 밝히고 "이보다 더 깊다"고만 했습니다. 다음날 다시 줄을 더 늘여서 물속에 드리웠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로 추가 땅에 닿지를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흘러가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여전히 '이보다 더 깊다' 는 말만 계속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깊다” 이처럼 신앙의 깊은 세계는 측량하지 못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측량한다고 하여도 여전히 "이보다 더 깊다"는 말만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얕은 물가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와 말씀의 깊은 세계로, 예수님의 인격의 성숙한데까지 자라나는 신앙의 깊은 세계로 나아갑시다.

에스겔이 성전 문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따라 1천척 또는 1천척 또 1천척 또다시 따라 가면서 1천척을 척량하였더니 처음 발목, 무릎, 허리, 헤엄쳐야할 만큼 깊은 물로 이어지고 마침내 강을 이루었습니다. 지금보다 더 깊은 신앙으로 주님처럼 해같이 빛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 : 주님 우리 소토교회가 변화산이 되게 하시고, 우리 성도들이 그 변화의 황홀함을 맛보게 하옵소서.

주님 재난을 당한 네팔을 불쌍히 여기셔서 저들의 살 길을 열어주시고, 선교사들이 그곳에서 소금과 빛이 되게 하소서.

일본이 회개하게 하소서. 자신들이 저지른 악행을 부끄러워할 줄 알게 하시고,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착취하고 핍박한 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려는 치졸한 짓을 그치게 하소서. (*)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