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창27:41] 네 형의 분노가 풀리거든 (야곱과 에서)

코이네 2016. 7. 19. 22:28
>

네 형의 분노가 풀리거든

본문 : 창세기 27:41-45

2016.7.10.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콩가루 집안 이삭의 가족

 

유머) 콩가루집안 : 아버지는 제비, 엄마는 날라리, 아이들은 비행청소년

 

아버지 이삭은 자신의 눈이 침침하고 이제 늙어 언제 죽을지 모르니 그 아들에게 축복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미 에서가 그 장자권을 야곱에게 판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에서를 불러 별미를 만들라 하고 축복하고자 한다. 에서가 장자권을 판 것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서가 장자권을 경홀히 여긴 것에 대해 에서를 버렸다고 하였는데, 이삭은 그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이 에서에게 축복한다는 말을 들은 리브가는 자신이 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을 속여 야곱을 에서로 분장시키고 축복을 가로채게 한다.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녀는 남편을 속이고 또 아들도 그 죄에 동참하게 하여 향후 큰 재앙의 빌미를 제공한다.

 

야곱은 원래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아버지를 속이는 일이지만 그가 원하는 일이었기에 어머니의 계획에 동참한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형의 축복을 가로챘고 목적을 달성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마침내 원하던 것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남의 축복을 도둑질해서 자신의 축복으로 만드는 이기적인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에서는 장자권을 소홀히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별스럽지 않게 생각하고 무책임하게 행동했던 대가가 이렇게 클 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축복을 뺏기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깨달았고,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기보다 야곱을 미워하는 데 더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 야곱을 죽이겠다면 분기탱천 하여 아버지가 돌아가기만 기다렸다.

 

이렇게 믿음의 가정이 하루아침에 콩가루집안이 되어 버렸다. 사건 전체를 보면 여기서 누구 하나 잘 한 사람이 없다. 모두 자기 생각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하다 보니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미워하게 되고, 급기야 형제들 간에 죽이려는 공포가 그 집안을 뒤덮었던 것이다.

 

지금 집안이 이렇게 콩가루집안이 되었고, 형제가 미워하여 살인이라도 금방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를 그 집의 안주인인 리브가가 가장 먼저 눈치챘다. 리브가는 고민을 하다 아들 야곱을 자기 친정집으로 보내고자 한다. 그녀는 이런 결정을 하며, 어찌 한 날에 두 아들을 잃겠는가 자조 섞인 혼잣말을 한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야리브가는 에서도 자기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편애한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게 되는지를 알았다.

 

가족

 

2. 리브가의 선택

 

이렇게 문제가 터지자 당황한 것은 리브가였다. 흔히 우리는 문제가 불거졌을 때 최선의 선택하고자 한다. 그런데 최선이 안 되면 차선, 차선도 안 되면 차악을 선택하여 어떻게 하든지 피해를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얻고자 한다.

 

리브가도 차선을 택했다. 일단 에서의 노기를 가라앉히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큰 아들의 분노 때문에 두 아들이 상잔하여 둘 다 죽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야곱을 떠나보냈다. 일단 둘이 떨어져 있으면 그 분노도 가라앉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안정되면 작은 아들을 불러 화해시켜야겠다. 이것이 그녀가 생각한 최선이었다. 그렇게 그가 사랑하는 둘째 아들을 친정집으로 보냈다. 하지만 이후 그녀는 다시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볼 수 없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더 놀라운 것은 이삭이 이 일 후 무려 43년이난 더 살았다는 것이다. 눈까지 어두워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이삭이 팔팔한 아내 리브가보다 훨씬 더 오래살았다.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우리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다. 그러니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도록 맡겨야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이다.

 

 

3. 왜 이렇게 되었을까?

 

모두에게 물으면 다 자기 이유와 생각이 있다. 그런데 자기 생각대로 했더니 비극이 왔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콩가루집안 이삭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기도에도 차원이 있다. 우리는 대부분 “주님 내 뜻대로 이루어주옵소서” 하며 기도한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유심히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가 영적으로 듣는 귀가 열리게 되면 이렇게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네 뜻대로 되면 다 잘되겠니?” 이전에는 “그럼요” 하며 아주 자신있게 대답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삭의 가족들이 모두 자기 뜻대로 했더니 콩가루집안이 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능력이 없다는 것을 비로소 인정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여기가 터닝포인트다. 요구하는 기도에서 듣는 기도, 침묵하는 기도로 바뀌어 지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성숙해야 한다. 내 뜻대로 되게 해달라는 태도에서 주님의 생각은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여쭈어보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도록 할 때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 제가 에서를 축복하려 합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삭은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전에 이렇게 하나님께 물어봤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하나님은 이삭에게 당신의 뜻을 알려주셨을 것이며,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삭만큼 그렇게 영혼이 맑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과 그 음성을 알아채기 힘들다. 그렇기에 이렇게라도 기도해야한다. “하나님 제가 에서를 축복하고자 합니다. 이 일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께서 선한 길로 이끌어주옵소서” 주님의 뜻을 순종하기 어렵다면 만사를 주님께 맡기는 습관이라도 키워야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해서 일어나는 인생의 비극을 방지하거나 극복할 수 있다.

 

4.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이삭의 집안이 콩가루집안이 되어갈 때까지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마치 하나님은 이삭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처럼 그저 내버려두시는 것 같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말씀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은 그 백성의 일에 무관심하거나 방치하지 않으시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손길로 모든 일을 조정하시며,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그들을 이끄시며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이삭의 가정도 한 순간 이렇게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우리 인생 또한 그렇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삶에 하나님은 적절하게 개입하시며, 우리의 삶을 조정해주신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고, 미래를 향한 소망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 간섭하시며,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내 앞길을 주님께 맡기고 든든한 마음으로 우리 할 일을 제대로 하며 살아가자.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