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엡1:15]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 박동진목사

코이네 2017. 11. 19. 00:34
>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본문 : 에베소서 115- 23

2017.11.12.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 : 박동진 목사

 

 

에베소서를 썼을 당시 바울은 감옥에 갇힌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감옥에 갇혔어도 간절한 마음으로 에베소 교회을 향하여 기도하며, 편지로 그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고도 그 축복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그들의 영적인 눈이 열려서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영적인 축복을 이미 받은 사람인가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큰 축복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그에게 예배드린다는 것, 이 모두가 놀라운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축복을 우리에게 주셨는가를 분명히 깨달아야만 할 것입니다.

바울의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먼저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 주셔서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며, 영광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일까? 사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그 경험을 우리에게 나누어줍니다. 우리는 그것을 듣고 또 우리가 경험한 것을 서로 비교해보며 또 나누게 됩니다. 그렇게 서로서로가 경험한 것을 나누다보니 공통적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증하며,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최근 한 여대생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신지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기독교학교라 성경수업이 있고 그 시간을 가르치는 목사님이 이것이 하나님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말하는 내용들이 대부분 개인적인 체험이거나 심리적인 느낌이지 객관적인 증거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교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부정적인 일들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이런 비신앙적인 일들을 잘 믿는다는 아니 믿음을 가르친다는 목회자들이 저지를 수 있을까 싶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하나님의 증거라고 내세우는 것들이 대부분 그저 하나님을 믿고 싶어서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혹 그런 생각 하지 않으십니까? 솔직히 말하면 저도 이런 생각을 참 오랫동안 했습니다. 이런 생각한다고 ~ 나는 믿음이 없어, 아무래도 난 믿음의 사람이 아닌가봐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이런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의심을 갖는다는 것은 영적인 것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며, 믿음이 더욱 온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이런 의심과 의혹을 극복해가면서 더욱 다져지고 온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솔직히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면서도 내가 믿고 싶은 하나님을 참 많이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장 만들고 싶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조사는 해보지 않았지만 현재 우리 한국기독교인들의 신앙행태를 보면, 우리의 욕망을 마음껏 채워주는 그런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신앙의 목적을 나의 소원을 이루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다면 누구라도 좋다, 나의 욕심과 욕망을 채워줄 수 있다면 그 하나님이 마귀면 어떠랴?

 

여러분, 예수님이 직접적인 구원사역을 시작할 때 먼저 광야에서 40일동안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금식기도를 마치고 나올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이 마귀입니다. 마귀가 배고픔에 굶주려있는 예수님께 제안합니다. 이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해라.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배고픔에 허덕여 있고, 떡만 주면 너를 구세주로 떠받들 것이다. 떡이 곧 하나님 아니냐? 성전 꼭대기에 데려다 놓고는 여기서 떨어지면 천사가 너를 떠받들어줄 것 아니냐? 그리해서 사람들에게 신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아라. 그런 초월적이고, 신비한 능력이 바로 하나님이 아니냐? 산 위에 올라가서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절해라 그러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권력을 네게 주겠다. 권력이 바로 하나님이 아니냐?

마귀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바라는 하나님은 풍족한 재물과 신비로운 능력 그리고 세상의 모든 권력을 움켜쥘 수 있도록 해주는 신, 너의 현세적이고, 현실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그런 신이 아닌가? 내게 네 영혼을 팔면 내가 이 모든 것을 주겠다, 내가 곧 너에게 부귀영화를 안겨다 주는 신이다. 나를 섬겨라.

 

그렇게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 수준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도 실제로는 온갖 어중이떠중이 잡다한 신들과 우상을 섬기는 그런 결과를 낳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오늘 성경말씀을 보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그리고 영광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 하나님은 누구인가? 이제 우리의 수많은 상상은 접어두고 성경이 실제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서 우리 인간세계로 와 우리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모습으로 보여주신 하나님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보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인간에게는 세 가지 종류의 눈이 있습니다.

먼저 육적인 눈인데 이것으로 현상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학문적인 눈, 혹은 이성과 지성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사고를 하고 학문을 익혀나갑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에게는 영혼의 눈, 마음의 눈이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의 세계, 영의 세계, 하나님의 세계를 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이 마음의 눈이 밝아져야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바로 마음의 눈, 영안이 열려서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의 눈은 지혜와 계시의 영 곧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의 생각을 밝히고, 우리의 영의 눈을 뜨게 하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다스리고, 새롭게 창조해 가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게 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입니까?

다시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는 그 장면으로 돌아가봅시다.

마귀는 예수님께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진짜 하나님이 아니다. 이미 인간들은 욕심에 가득차고, 죄에 가득차서 그 하나님을 떠나와 버렸다, 그들이 원하는 하나님은 부귀영화를 손에 쥐어주며, 자신들의 욕망을 마음껏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신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 신이라야 그들은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믿고 섬길 것이다. 바로 그런 신이 어디 있는가? 내가 바로 그 부귀영화의 신이며, 욕망을 채워주는 신이다. 그러니 너는 헛된 짓 하지 말고, 내게 절하고, 나를 섬겨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마귀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아니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사는 존재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다.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능력을 마음껏 부리는 신적인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과 그런 자신의 분수를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온전히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부귀영화와 세속의 권세가 아니다. 그런 권세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너 마귀가 아니다. 바로 하나님이다. 참된 권력은 하나님께 나오며,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차 있고, 이 세상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니,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눈으로 우리의 영안을 밝히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실한 세상에 대한 눈이 떠집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의 참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왜 하나님의 존재가 의심될까요? 아직 우리의 영안이 밝지 못해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그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제게 누구를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름은 들어봤습니다. 그보다 더 친한 사람을 물으면 그 사람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 사람과 어릴 적부터 알아왔고,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마음의 흉금을 털어놓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저 이름만 알고, 겉모습만 아는 그런 피상적인 관계를 두고 안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런 피상적인 수준을 벗어나 더 깊이 아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알면 알수록 실망을 안겨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알면 알수록 진국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됨됨이가 진국인 사람은 알면 알수록 더 믿음이 가고, 신뢰할 수 있기에 더 가까이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놀라운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세계가 궁금해지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세상의 부귀영화를 안겨준다고 유혹하지만,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을 알게 되면 그 따위 부귀영화는 한갓 안개와 같고, 허무한 꿈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우리의 영안을 밝혀주시면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얻고 그것을 누리며 살아도 우리가 사는 목적을 알지 못하면 항상 허무합니다. 내가 왜 사는가 싶고, 이리 살아도 되는가 싶고, 내가 누군지,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는 것만을 느끼며 더 깊은 수렁으로 삶의 갈증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지금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길 소망하십니다. 우리의 영안이 밝아지면 하나님의 그 기대와 소망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는 부귀영화와 세상의 권세 따위로는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훌륭하다고 우리가 칭송하는 분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린 사람들입니까? 아니죠. 도리어 그런 사람들은 역사 대대로 손가락질 당하고, 욕먹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가 훌륭하다고 칭송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른 천명을 알고, 그 소명을 이루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혹 자신은 좀 힘든 인생을 살아도 세상을 유익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주십니다. 인생의 소명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자기 능력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 성령께서 우리 영안을 밝혀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이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훌륭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불러 주셨기에 무가치한 나의 삶에서 참다운 가치를 찾았고, 허무한 삶에서 보람을 찾았으며, 절망에서 희망을, 죽음에서 생명과 영생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 은혜의 자리로 당당히 나아갑시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