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마7_9]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지 않습니까?_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0. 5. 20. 14:51
>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본문 : 마태복음 79 ~ 11

2020.5.17.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자 : 박동진 목사

 

 

1.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 구체적으로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바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너희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주실 것이고, 너희가 찾기 위해 열심을 내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찾게 해주실 것이고, 너희가 모험심을 갖고 닫혀 있는 문을 두드리면 하나님이 열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열심을 내고, 하나님과 함께 닫힌 문을 열며 하나님이 열어주고자 하는 세상에 도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그리 원해도 얻지 못했던 것을 얻을 것이며, 우리의 노력으로는 꿈도 꾸지 못한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놀라운 세상을 경험하고 또 그런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보다 더 훌륭하고 거룩한 사람들이 되길 원하십니다. 자식이 어떻게 하든 잘 되게 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며,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러면서 오늘 예수님은 여기에 덧붙여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라고 권합니다. 어떤 오해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 예수님은 이를 직설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이 자식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고 하면 뱀을 주는 그런 고약한 심보를 가진 분으로 알고 있지 않느냐? 그런 것이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도 예수님이 지적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고약한 심보를 가진 분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3.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나님이 이런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합니다.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죄인의 가장 특징이기도 합니다. 뭐든 자신에게 유리하고 이익이 되고, 또 자신이 바라는대로 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땐 마치 간이라도 빼어줄 듯이 행동합니다. 그러다가 조금만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고, 불이익이 오고, 불리한 결과를 갖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서 버립니다. 심지어는 원수처럼 대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겠다고 하니 모두 머리 숙여 찬양하며 경배했습니다. 그러다가 바로가 화를 내며 노역을 더 심하게 하니 모두 모세를 원망하고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 좀 평안해지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와 복을 받다가도 또 돌아서서 배반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망합니다. 남북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다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먼저 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망합니다. 예루살렘성은 완전히 무너져 폐허가 되고, 성전을 불에 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을 재건하지만 그들은 독립국이 되지 못하고 계속 식민지 신세를 면하지 못합니다. 헬라 알렉산더의 지배를 받다가 나중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습니다.

 

3-1. 그런 속에서 이스라엘은 그래도 여러 경건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신앙의 명맥은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하나님은 심판하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심판받아 망하게 되었는가는 고민하기보다 그저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셔서 우리가 이 생고생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하나님은 대하기 좋고 다가서고 싶은 그런 친근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심판해서 망하게 해버리는 무시무시한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늘 하나님의 눈치를 살핍니다. 신학도 그렇게 발전해갔습니다. 바리새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가르치는데 그 핵심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 눈 밖에 나지 않게 행동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3-2.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보다는 세상의 탐욕스런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내 맘대로 사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내 맘대로 세상의 탐욕을 쫓으며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늘 하나님의 율법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협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실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당시 그들의 가장 큰 관심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은 크게 세 가지의 모습입니다.

 

첫째는 시키는 대로 안하면 무지막지하게 심판하시는 무서운 하나님

둘째는 내가 원하는 것은 못하게 하면서 그걸 빌미로 나를 벌주시는 고약한 하나님

셋째는 언제나 내가 할 수 없는 것,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요구하면서 못 한다고 안한다고 혼내는 불통의 하나님

 

4.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성품이 얼마나 온유하고 다정하신지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라고 하나님을 불러라,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가 아빠를 봤을 때 두 팔 벌리고 아빠하면서 달려들 듯이 너희도 그렇게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도 되나? 예수님께서 뭔가 잘 못 알고 계신 것이 아닌가? 그만큼 예수님이 가르치고 보여 주신 하나님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소한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모습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향해 두 팔 벌려 아빠하고 달려가는 그런 친근하고 사랑스런 하나님입니까?

 

5.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예전에 많은 이들이 한 분 하나님이 세 가지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이해를 했습니다. 빛은 하나이지만 상황에 따라 열이 되기도 하고,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기도 하고, 스펙트럼을 통과하면 갖가지 색을 만든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식의 이해를 양태론이라고 하는데,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설명입니다.

사실 삼위일체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설명하는 이론은 없습니다만 핵심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세 분이다. 세 분 모두 독립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구분이 되는 하나님이다. 둘째 그럼에도 이 세 분은 하나이다. 하나라는 말은 완전한 연합과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삼위일체와 비슷한 개념을 가진 것이 바로 부부입니다.

2:24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녀가 한 몸을 이루는 것이 부부인데, 안타갑게도 우리 사람들은 하나라고 하면서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아주 어설픈 하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완벽한 하나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는 서로 오해하지 않습니다.

예전 제가 부산에 있는 모 교회 선교를 담당할 때 선교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분하고 여러 가지 의논을 한 후 선교부가 다 모이면 의논한 것을 바탕으로 일을 추진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 저와 이야기해서 합의한 내용을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스스로 다 뒤집어버립니다. 저와 한 말 다르고 모두가 모여서 한 말 다르고.. 늘 이런 식이다 보니 이 분이 제가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심이 느껴지고 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저의가 있다 보니 자꾸 오해가 쌓입니다. 여러분 정직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면 서로 오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 분 하나님은 서로에게 온전히 정직하며, 진실합니다. 숨김없이 생각하고, 정직하게 말하고, 정직하게 행동합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서로 시기하지 않습니다.

기도 중에 예수님께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데 하나님 아버지 하지 않고 예수님이라고 하면 아버지 하나님이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 성령 하나님께 기도하면 성자 예수님이 서운해 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우리는 섭섭하니까요. 그래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물었더니 아이가 엄마하면 아빠가 좀 섭섭하고, 만일 아빠라고 하면 난리가 나겠죠. 그래서 아이가 조금 더 눈치가 있어지면 중립을 지킵니다. 그러다가 엄마만 있으면 귀에 대고 소근대죠. “난 엄마가 더 좋아

그런데 하나님은 서로에 대해 시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너보다 더 낫다고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습니다. 왜 나를 더 대우해주지 않느냐고 서운해 하거나 섭섭해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서로를 높여줍니다. 당신이 잘 되는 것이 내가 잘 되는 것이고, 당신이 높아지는 것이 내가 높아지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왕비처럼 대했더니 내가 왕이 되듯이 말입니다. 당신의 아픔이 내 아픔이고, 당신의 슬픔이 내 슬픔이며, 당신의 영광이 내 영광이고, 당신의 기쁨이 곧 내 기쁨이다.

 

셋째는 서로를 배려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서로를 배려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배려하고 아들은 성령을 배려하고 성령은 아버지를 배려합니다. 세 분이 서로를 배려하며,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좋은 것을 주고 좋은 일을 하고 더 좋게 되게 할까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꺼이 섬겨줍니다. 내가 섬기고 희생하는 것이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섬겨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속상해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섬겨서 기쁘고, 당신을 위해 손해 봐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어제가 마지막회였나요?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에 보면 바람핀 남편이 회개하고 자기 아내에게 엄청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때 하는 말이 내가 당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기쁘다고 합니다. 극 중에서는 이 말도 진심인지는 모르겠는데 그 말만 두고 본다면 참 좋은 말입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서 좋다. 영화 국제시장에도 보면 베트남전에서 주인공이 고생고생하면서 편지에 이렇게 씁니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서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인 것이죠. 하나님은 서로에게 이렇게 배려하며, 서로를 섬깁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겁니다.

 

넷째는 서로 소통합니다.

제대로 소통하려면 잘 들어줘야 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들어주고,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나의 생각을 또 전하는 것이 소통입니다. 그저 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더 좋은 것을 위해 의논하는 것이 소통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협의하기도 하고, 때로는 타협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한 걸음 물러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소통하려면 상대를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상대를 존중해야 소통이 될 수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내 생각을 강요해서 내 생각대로 되게 하는 것은 소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소통하는 하나님입니다.

 

6. 여러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의 참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세 분이 서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며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고 신실하시며, 시기하지 않으시며, 서로를 배려하고 섬기는 분입니다. 또한 서로를 존중하며 소통하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이게 하나님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고 하나님의 습관이고 하나님의 생활태도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생활태도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실 때도 이렇게 하십니다.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이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즉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서로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7.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너희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이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입니다.

1:12-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목숨 다해 사랑합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대학 다닐 때 여름수련회를 갔는데 자기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 친구 하나가 앞으로 나가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의 장점은 사람이 참 좋다는 것이고, 단점은 좋아도 너무 좋다는 것이라고 소개해서 웃음바다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던져주는 그런 싸이코나 개막장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데, 우리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하며, 하나님을 멀리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얼마든지 주실 수 있는 부요를 가지고 계시며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신 분이시며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자상하셔서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을 알고 계시며,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자 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정이 많으시고 사랑이 풍성하시고 긍휼히 여기심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 자녀들과의 솔직한 대화를 원하십니다. 좋은 것으로 주시는 아버지, 이 분이 바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분이 나의 아버지입니다. 이분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여러분 멋지지 않습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래를 보시고 계시기 때문에 실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그렇게 명령하셨습니다. 혹시 우리 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제 오해를 벗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온전한 믿음을 가집시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

 

by 박동진 목사 (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