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마7:13]좁은 문, 믿음의 정도를 걷는 사람들

코이네 2020. 6. 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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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본문 : 마태복음 713-14

2020.5.31.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 : 박동진 목사

 

 

 

우리는 예수님께서 산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산에서 가르친 것이라고 해서 이를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기억을 되살려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먼저 예수님은 팔복을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너희는 당시 율법을 가르쳤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의로워야 한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며 기도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리고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어야 한다. 너희는 먹고 마시는 일에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야 한다. 너희는 형제를 비난하지 말며, 늘 자신을 돌아보며, 거룩한 척 하지 말라,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는 좋은 아버지 되신 것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이기에 하나님처럼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사람이 되어라.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내용을 다시 정리해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복있는 사람이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온전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처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 자리에서 듣고 있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마음이 어땠을까요? ~~ 역시 예수님의 가르침은 뭔가 달라도 달라,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실까? 아 난 오늘 정말 진리를 들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난 하나님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구나, 내가 이런 사람인 줄 미처 몰랐네, 이를 깨우치게 해주신 예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했겠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갑갑해지면서 하~~ 이거 참 ..뭐랄까요?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너무 좋은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려고 보니 답답한 겁니다. 과연 가능할까? 제가 목회하면서 참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목사님 성경말씀대로 하면 망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삽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제가 하는 대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를 무시하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지키지도 못할 말을 하는 그런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하나님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저도 믿음이 어렸을 때에는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사냐?’

 

예수님께 한 잘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젊은 나이에 높은 관직에 오른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신앙도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율법을 아주 열심히 지키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이 말을 들은 그 잘난 청년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역시 예수님이십니다. 제가 무엇이 부족한 지 이제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가나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배우며 사는 것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며 자신의 모든 지위와 직업을 다 내팽개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까? 아닙니다. 그 청년은 고민했습니다. 그는 재물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근심하다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 청년이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제 생각에 제자들도 비슷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청년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영생을 얻고자 하는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하면 출세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끼리 누가 더 크냐는 논쟁을 벌이지 않습니까? 그런 현세적인 출세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는 주님의 가르침은 그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듣었을 때 그들은 정말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예수님을 따라 가자니 뭔가 답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무르자고 할 수도 없고, 진퇴양난인 것이죠.

예수님께서 이런 제자들의 반응을 읽으신 것인지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구약성경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너희 앞에 생명과 사망의 두 가지 길이 놓여있으니, 생명을 선택하라고 호소합니다. (30:19). 시편 1편에서 다윗은 멸망으로 끝나는 악인의 길로 가지 말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의 길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1:6).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두신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있음을 외치며 생명의 길로 가야한다고 선포했습니다(21:8). 어디로 가야합니까? 당연히 생명의 길로 가야하는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생명의 길을 택하지 않았고, 망하는 길로 갔고, 마침내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예수님도 우리에게 사망의 길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길이 사망의 길입니까?

 

(8:5-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육체적인 욕망을 따라 사는 것,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현세에 매여 살아가는 인생, 그래서 언제나 오늘 어떻게 살지 이 고민으로 살아가는 인생, 이것이 바로 사망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사망의 문은 엄청 넓고 그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방금 읽은 로마서의 말씀을 따르면 영의 생각을 갖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바로 생명의 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좁고 그 길은 협착하지만 이 길이 사는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 부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소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갈 사람들입니다.

 

빌립보서 3:7-10에서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의 삶이 자신의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고 고상한 일로 여겼습니다. 좁은 문은 좁은 길로 이어집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불행 끝, 행복시작이 아닙니다. 대로(大路)가 열리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걸 몰랐다가 신앙생활 중에도 고난이 닥칠 때 많이들 흔들립니다.

 

성도여러분, 좁은 길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믿음의 정도를 걷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내 마음대로, 내 욕심대로, 세상의 풍조대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삽니다. 그러니 좁은 길은 부자유스럽고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많은 제한과 속박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좁은 길은 고독한 길입니다. 누가 대신 가 줄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오롯이 내가 가야 할 길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이 길로 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이 길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좁은 길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힘은 들지만 주님과 함께 걷는 기쁨과 감격이 있습니다.

 

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성도여러분, 편안한 길을 가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신앙은 우리 인생의 끝을 보게 합니다. 그 끝은 바로 죽어서 다시 사는 부활의 생명을 갖고 하나님의 나라에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지금 좁은 문을 들어서, 좁은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좌우로 흔들리지 말고 담대하게 걸어가십시다. 이 좁은 길의 끝 천국에서 주님을 뵈올 것입니다. (*)

 

by 코이네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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