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묵상

[시135:1] 내가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을까?

코이네 2020. 12. 9. 19:26
>

내가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을까?

135:1- 21

 

 

 

시편 135편을 처음 읽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시편의 다른 시들에 나오는 일반적인 표현 어떻게 보면 진부한 표현들이 잔뜩 나열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두 세 번을 반복하며 읽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시는 언제 어떻게 지은 것일까?

 

예전 어느 봄날, 꽃이 피고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한 그런 날에 교회 뜰에 서서 눈을 감고, 봄 햇살을 만끽한 적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온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이렇게 시작한 찬양이 끝이 날 줄 모른다. 더 크게 소리 쳐 찬양하고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높이 올려 찬양하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며 내 몸과 마음 내 영혼은 감격에 차 있었다.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지 ..

아마 시편 135편을 지은 시인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는 제사장이 아니면 레위인일 것이다. 매일 제사를 집례하고 성전을 돌보며 분주히 성전 뜰을 오가다가 문득 하늘을 봤더니 하늘이 너무 아름답고, 바람이 좋다. 잠시 걸음을 멈추어 서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려 깊이 숨을 들여 마신다. 그리고 잠시 묵상한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창조한 푸른 하늘과 산들과 숲과 시내 그리고 예쁜 꽃들이 바람에 한가롭게 흔들리고, 하나님의 평화가 그 마음에 퍼져간다. 자신도 모르게 입술이 열리고, 하나님을 찬양한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그렇게 시작된 찬양, 그 찬양 속에서 하나님을 묵상하고 찬양을 통해 그 영혼은 하나님과 깊은 교감을 가진다. 얼굴은 기쁨으로 환하게 빛이 나고, 마음 깊은 속에서 뭔가 격한 감동이 밀려온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 찬송에 힘이 실리고, 성령에 감동되었다. 성령에 감동되니 하나님이 느껴지고 하나님 보인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답다.”

 

하나님이 얼마나 선한 분인지 느껴진다. 하나님의 이름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온 세상은 더할 나위 없이 좋으며 이 세상은 아름답게 빛이 난다. 선하신 하나님이 지은 것이며, 하나님이 만들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선하다는 말은 좋다, 즐겁고, 유쾌하다는 뜻이다. 아름답다는 말 역시 감미롭고 사랑스럽고 즐겁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즐겁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일렁입니다. “하나님하고 불렀더니 내 마음에서 즐거움이 넘쳐나고, 하나님이 보고 싶고,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은 열망이 넘쳐난다.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얼마나 예쁜지, 그래서 계속 아이 이름을 불러댔다. 그러면 우리 아이는 까르르르 웃으며 손을 내밀고 안아달라고 보챈다.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런지. 하나님 저를 이처럼 즐거워하십니까? 저도 그렇게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가 아빠 하면서 달려와 제 품에 쏙 안기듯이 저도 그렇게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사랑하길 원합니다.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도다.”

 

하나님을 선하다 하며, 하나님을 아름답다고 찬양하다 보니,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랑하는 자신의 존재가 새롭게 보인다. “난 특별하구나.” 남보다 뛰어나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니 특별하구나,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선택해주셨구나, 그래서 난 특별한 사람이구나.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그렇게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다시 보니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신 분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은 특별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있던 우리를 구원하셨고,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놀라운 위엄을 보이셨으며, 세상의 모든 왕들을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감히 고개 들 자 누구며, 누가 감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이 기억이 나고, 하나님이 하실 일이 눈에 그려진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는 역사에 내가 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이 부분을 읽다가 잠시 멍해졌다. 어떻게 하나님을 위로할 생각을 다할까? 우리가 하나님을 위로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몇 번을 읽으며 이 시인이 참 같잖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말도 안 되는 우리의 위로에 감동받는 분이라는 사실.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큰 행사를 치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몰두하다 보니 피곤에 절어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딸이 날 보며 아빠 사랑해요. 아빠 파이팅~’을 외친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아이에게 격려 받은 나는 신나게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마치고 나니 이번에는 아내와 딸이 이렇게 말한다. “수고했어요. 멋진 행사였어요.” 이렇게 칭찬받으니 기분이 좋다. 내가 아주 엄청난 일을 한 것 같고, 그 동안 수고한 것이 참 잘한 것 같이 느껴졌다. 하나님도 이러시려나?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 정말 잘하셨어요. 정말 멋있어요, 하나님 힘내세요그러면 하나님께 그렇게 뿌듯해하며 기분 좋아하실까?

 

열국의 우상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은 선하시며, 아름다우시고,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찬양하면 하나님은 감동하시고 또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해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목석이 아니다. 하나님은 감정이 아주 발달한 분이셔서 우리와 교감하길 원하고, 또 우리의 행동에 감동하고, 우리와 그러고 싶어 우리를 특별한 소유로 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뭘 상상하던 그 이상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심을 다해 불러보자. “할렐루야우리가 그렇게 찬양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들으며 흥에 겨워 따라 부르기도 하고, 추임새도 넣고 또 춤까지 출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by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