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강변의 울음
본문 : 시편137:1-9
이 시편은 나라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애를 잘 표현하고 있는 시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채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얼마나 귀중한 것을 누리고 있었으며, 이것이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그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1.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들은 지금 바벨론 강변에 앉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바벨론의 포로수용소가 바벨론 강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기서 노예로 여기저기로 팔려나갈 것입니다. 이전에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의 당당한 백성이었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득 안고 살았지만 이제는 포로가 되었고, 또 노예가 되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우는 것입니다. 고달파서 울고, 서글퍼서 울고, 힘들어서 울고, 또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웁니다. 거기에 옛날을 생각하니 후회의 눈물이 밀려옵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스라엘은 왜 망했을까요? 이렇게 나라를 빼앗기고 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힘이 없어서, 우리가 약소국가라서 그리고 상대가 너무 강했고, 우리를 침략한 국가가 나쁜 놈들이라서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다른 이웃의 강대한 국가보다 더 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을 때가 없었습니다. 항상 주변국들은 이스라엘보다 강했고, 그들은 침략했지만 이스라엘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셨기에 이스라엘은 수많은 침공을 막아내고, 어떨 때는 강대국보다 더 강한 나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침공을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하나님이 그들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아서 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왜 망했습니까?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버렸습니까? 크게 세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계속해서 우상을 섬겨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그들은 늘 주변국들이 섬기는 우상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작고 초라해보였고, 자신들의 주변에 있는 강대국들의 신은 강해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저 강대국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기면 저 강대국들처럼 강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대단했다고 여겨 선택한 우상들은 모두 사람들이 만든 허무한 우상들이었고, 그 우상을 섬기는 그들 역시 허무해졌고, 타락했으며, 힘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알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대단하게 여긴 우상들이 지키는 그 대단한 나라들도 다 망해버렸다는 것입니다. 망할 것을 섬기니 망해버릴 밖에요.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니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법천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니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부정부패가 심해집니다. 빈부차이가 극심해지고, 백성들은 점점 살기 힘들어지고, 나라는 점점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타락하고,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백성들은 헛된 것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니 나라가 점점 무법천지가 되고, 망조가 든 것이죠. 바벨론의 침공으로 망했지만 이스라엘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그 결과 나라의 구심점이 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왕과 지도자들이 권위가 섰으며, 백성들이 한 믿음으로 똘똘 뭉쳤는데, 이제는 모두 제각각 자기 살길만 찾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망할 수 밖에요.
2.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그들은 나라를 잃었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것입니다. 포로가 되어서야 그들은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통곡하며 후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너무 힘들고 재미없다고 푸념했습니다. 잔소리 좀 하지 말라고 역정을 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싫었던 그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고 예배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아니 그들은 교만하여 하나님께 제사드려준다고 생색내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만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라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나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우리가 복을 걷어찼구나..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아주시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우린 그럴 자격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당연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는데 그걸 몰랐기에 후회가 더 뼈저립니다. 그제야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은혜인지 그들이 예배를 빼앗겼을 때 절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시온이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3. 멸망할 딸 바벨론아
그들은 이전에 바벨론을 동경했습니다. 우리보다 강한 나라, 선진국. 위대한 나라. 그랬는데 그런 바벨론에 의해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겨버렸습니다. 바벨론뿐만 아니라 이웃에 있는 강대한 나라, 애굽과 아람, 앗수르 등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강대국을 동경했고, 또 그들과 관계만 잘 유지하면 저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스라엘을 지켜주지 않았고, 도리어 원수가 되어 그들을 침략했으면 빼앗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니 그제야 바벨론의 실체가 눈에 제대로 보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동경하는 위대한 선진국이 아니라 망할 나라였던 것입니다. 동경할 나라가 아니라 저주하고 미워해야 할 원수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안 것이죠.
“있을 때 잘해” 라는 말이 있습니다.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정말 귀한 것은 평소에는 그리 귀하게 여겨지질 않습니다. 빼앗겼을 때, 자기 곁을 떠날 때에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고,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어리석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겼고, 망해버렸습니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버리고 떠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처절한 모습이 보이시나요?
여기서 한 가지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잃어버려 포로가 된 이 때에도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습니다. 울면서 그 예루살렘이 다시 회복되기를 애타게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망했지만 끝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능히 우리를 다시 일으켜세우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이 다시 회복되어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온전한 예배드리는 것을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끝났다고 하기 전에는 끝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끝났다고 하셔도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십니다. 회개는 늦는 법이 없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백성을 늘 새롭게 합니다. (*)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
'코이네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138] 내 영혼에 힘을 주어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0) | 2021.01.06 |
---|---|
[시91:1]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_박동진목사 (0) | 2020.12.31 |
[시136:1]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0) | 2020.12.16 |
[시134:1]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선 사람들 (0) | 2020.12.02 |
[창3:5]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뜻은? (0) | 2020.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