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시142_1] 희망을 포기하는 것은 죄악이다_박동진목사

코이네 2021. 2. 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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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상할 때에도

본문 : 시편 1421- 7

설교 : 박동진 목사 

 

 

다윗은 왕이 될 생각도 없었던 시골의 한 양치기 소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최고의 장수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사울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왕을 이어 왕이 될 요나단의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승승장구, 모든 것이 다윗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고, 그의 앞길은 그냥 비단길을 깔아놓은 듯 순탄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에게 엄청난 시련이 다가옵니다. 이렇듯 힘든 일이 그에게 생길 것이라고는 다윗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배경이 되어줄 줄 알았던 사울왕, 자신의 장인이 자신을 시기해서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용감하고 훌륭한 장수였다가 한 순간에 사울왕의 정적이 되어 그는 정처 없이 쫓기는 도망자의 인생을 삽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십년 이상을 그렇게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죽음을 무릎 쓰고 두 번이나 사울왕을 살려주어 자신의 진심을 보였지만 사울은 그 때뿐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시편 142편을 지을 그 당시 역시 다윗은 사울왕에 쫓겨 아둘람이라는 광야의 동굴에서 숨어 지낼 때였습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 못해서 그런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습니다.

 

 

 

저는 다윗의 일생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 고생 좀 그만 시키면 안 되겠습니까? 다윗이 너무 불쌍합니다. 이제 고생 좀 그만하고 살게 해주십시오. 다윗이 얼마나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까? 다윗만큼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착하고 믿음 좋은 다윗은 그만 힘들게 살고, 도리어 다윗을 괴롭히는 저 시기심 많고 악독한 사울이나 좀 괴롭혀주십시오.”

그런데 사울은 계속 괴롭히고 다윗은 계속 도망다닙니다. 다윗도 혹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도대체 이 시련의 끝이 있을까? 내게도 편안한 날이 오기나 할까? 이렇게 고생만 하다가 죽는 거 아닌가?”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큰 결심을 하고 사울이 더 이상 쫓아올 수 없는 곳, 사울의 적이기도 하고, 다윗의 적이기도 한 블레셋이라는 나라로 망명해버립니다. 그리고 꽤 오랜 세월 거기서 생활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비로소 다윗을 포기해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죠. 이제 더는 사울이 나를 괴롭히지 않는구나. 살았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 그의 식구들은 블레셋 왕이 마련해준 작은 성에서 이전과는 달리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행복도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그 선봉에 다윗을 세웁니다. 천만다행으로 다윗은 그 전쟁에서 빠지기는 하지만 이처럼 다윗의 고난의 인생은 끝이 없습니다. 다윗의 성에 아말렉 군대가 쳐들어와 그의 식솔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가고 재산은 다 빼앗깁니다. 목숨 걸고 아말렉을 쳐들어가 모두 되찾아오지만 이제는 전쟁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잠시의 행복은 누렸지만 또 다시 시작되는 고난.. “하나님 고생 좀 안하고 살면 안되겠습니까?” 제가 다윗이라면 이런 기도가 저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도 다윗과 별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차이는 나지만 우리도 참 고단하고 힘든 세상살이를 합니다. 야곱이 이집트의 왕 바로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험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죠. 돌아보면 참 험악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소박한 소원을 말한다면 부귀영화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고생만 좀 면하게 해주십시오. 그저 좀 편안하게 살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내버려두질 않습니다. 다윗이 그런 고난의 인생, 도망자의 삶을 원하지 않았지만 사울이 내버려두지 않고, 또 아말렉이 내버려두지 않고, 또 블레셋이 내버려 두지 않고, 나중에는 그의 동지들과 친구들과 자녀들까지도 다윗을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아무리 내가 잘 해도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린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게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나는 편안한 인생을 원하지만 세상은 마귀는 내가 그렇게 편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여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편안히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이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다윗은 이것을 우리보다 더 빨리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인생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았습니다. 우린 다윗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다윗은 어떻게 했나요?

 

첫째,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간구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처지를 원망할 대상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해결자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처지와 그의 심경을 솔직하게 하나님께 말합니다.

2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하나님 제가 정말 너무 원통합니다. 너무 원통해서 말이 안 나옵니다. 저의 원통한 심정을 들어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우환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아서 도저히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절 좀 도와주십시오.

구체적으로 어떻게 힘들었을까요?

4절에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습니다.

6절에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7내 영혼을 감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하나님 저는 사면초가에 빠졌습니다. 저는 고립무원의 처지입니다. 누구도 절 도와주려 하지 않고,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 생명을 찾는 이들은 무자비합니다. 그들은 내 영혼을 돌보지 않습니다. 제 처지를 이해해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보다 강합니다. 제 처지는 정말 비천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마치 감옥에 갇힌 듯한 처지입니다. 제가 숨어 있는 이 동굴과 감옥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다윗은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하나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렇게 한스런 인생에 하소연하고 부르짖을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마저 계시지 않았다면 어쩔 뻔 했습니까?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고,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고, 또한 우리의 고난을 해결해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인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고 살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 감사하다. 하나님이 나를 알고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셔서 늘 하나님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최고의 행운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둘째, 다윗은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3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이 부분을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내가 숨이 넘어갈 듯 허덕일 때, 당신은 나의 앞길을 보살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가는데 홍해가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뒤에는 이집트의 대군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럴 때 모세가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 그리고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 길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가게 합니다. 그리고 뒤 따라 오는 이집트의 군대는 그곳에서 몰살시켜버립니다. 하나님은 길을 엽니다. 그 백성이 숨이 넘어갈 듯 허덕일 때 그 앞길을 여시고 보살펴주십니다. 그리고 그 대적들의 길은 막으시고, 또한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숨이 넘어갈 듯 허덕이지만 하나님은 나를 보살펴주십니다. 내 앞길을 보살피고 열어주십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을 믿고, 하나님이 보살피는 은혜의 삶에 자신을 던지며 살았던 것입니다.

 

5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살아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입니다.”

다윗은 욕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다윗은 욕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어떻게요? 다윗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그가 가진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기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것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도망자였습니다. 그런 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 잃어버려도 됩니다. 다 없어도 됩니다. 제겐 하나님만 있으면 됩니다. 저의 분깃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제 재산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저는 하나님으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소원합니다.

7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아멘.. 다윗의 기도대로 하나님은 갚아주시고 이루어주셨습니다.

헤밍웨이가 지은 소설 노인과 바다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희망을 포기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을 나의 분깃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희망을 포기하며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며 살아가는 것은 죄악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고난속에서 하나님께서 능력을 발휘하십니다. 내 인생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다윗의 신앙이었고 삶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