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고 온유한 하나님
본문 : 시편145:7-9
인내와 온유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인내가 사랑의 수동적인 면이라면, 온유는 사랑의 능동적인 면입니다. "온유하다"라는 말은 "친절하다, 인자하다, 봉사적이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라고 하였듯이 사랑은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며, 인자하게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은 가장 친절하고 온유한 분입니다.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시145:7-9)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자하심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가나안으로 이끌 때 친절하게 직접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고, 마치 독수리가 그 새끼를 날개에 업어 옮기듯 그렇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이끌고 돌보는 것을 보면 얼마나 세심하게 그들을 배려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 분인지 이렇게 찬양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선한 목자와 같이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양떼인 우리를 친절하게 이끌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며 모든 인류를 돌보시지만 결코 그분은 대충 대충 적당하게 넘어가는 분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세밀하게 돌보십니다. 지극히 미세한 부분에까지 정밀하게 하셔서 조금도 어긋남이 없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임을 아시고 우리를 대하여 참으시면서 언제나 친절하게 우리를 이끌어 주시며, 가르치시며, 하늘의 은총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로 이해한다면 끝없는 감사와 더불어 나의 이웃에 대하여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친절하심
이런 인자하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도 역시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인자하시고 친절하신 분이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주인이 당황해 할 때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을 거절하지 아니하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나인성 과부가 아들을 장사지낼 때 그녀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아들을 살려주신 일은 예수께서 인간의 고난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신가를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판에서 하루 종일 말씀을 듣느라 굶주렸을 때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저들을 먹이신 사건은 예수께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계셨음을 말해줍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극한적이 고통 가운데 계실 때에도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그의 끝없는 관심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자기 옆에 달린 강도가 회개할 때 그에게 낙원을 허락하신 사건은 정말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이 어떠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특히 세상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병든 자들이나 가난한 자들이나 천한 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여 주셨습니다. 그들과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들의 위로자가 되셨습니다. 그들 속에 깃들인 하나님의 형상을 일구어 내시면서 그들을 변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천히 여긴 한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서도 그는 친절하게 대하셔서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시므로 그녀의 잠자던 신앙을 일깨우고 뛰어가 전도하게끔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돌로 때려죽이려고 잡아온 간음한 여인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친절하게 그녀의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는 범죄치 않도록 타일러서 돌려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은 조그마한 친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이루시려는 진정한 친절임을 알게 됩니다.
친절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친절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힘이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 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 예수님은 모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에게 참 안식과 자유와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이런 인자하심과 친절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데 있습니다. 속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일 것입니다. 사랑 앞에서 모든 원수가 사라지고, 마귀가 물러가며, 완악하던 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랑은 친절한 것입니다. 친절은 사람을 감동시키며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은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글을 쓴 필자가 하루는 친구와 함께 택시를 탔는데, 내릴 때 자기의 친구가 운전사에게 "태워줘서 고맙습니다. 운전을 아주 잘 하시는대요" 라고 인사를 했답니다. 인사를 받은 운전사는 처음에는 놀리는 말인가 했다가 칭찬인줄 알고 떠났습니다. 그 친구의 말이 "나는 사랑을 다시 가져오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이 도시를 구하려면 그 수 밖에 없으니까"라고 하자 필자가 "어떻게 한 사람이 이 도시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반문을 했습니다. "한 사람이 아닐세. 나는 그 택시 기사의 하루를 기쁘게 했다고 믿네 .그 사람이 20명의 승객을 태운다고 가정해 보게. 어떤 사람이 그에게 친절히 대했기 때문에 그 사람도 그의 승객들에게 친절히 대할 것일세. 그러면 그 승객들이 다시 그들의 고용인이나 점원이나 웨이터나 자신의 가족에게 더 친절하게 대할 거 아니겠나? 다시 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게 될 것이고, 종당엔 선의가 적어도 천명에게 퍼질 수 있게 될걸세. 어떤가?" "이 방법이 아주 완전히 다 성공할 수 없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네. 아마 나는 오늘 10명의 다른 사람을 똑같이 대하게 될걸세. 만약 10명 중에서 3명을 기쁘게 해준다면 궁극에 가서는 내가 3천명 이상의 사람의 태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일세."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렇게 제대로 될지 모르겠네."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손해볼 건 없네. 아까 그 사람에게 일을 잘 했다고 칭찬하느라고 시간을 빼앗기지도 않았네. 내 칭찬을 그 사람이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일 또 기쁘게 해주려고 할 수 있는 또 다른 택시 기사가 있을 걸세."(리더스8803 P9)
정말 멋진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도 이 사람처럼 행동을 한다면 우리 교회 분위기가 금방 달라질 것이고 또 여러분의 가정의 분위기가 변화될 것이며,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친절한 말이나 행동은 결코 자신을 낮추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나의 친절로 해서 고마움을 느끼고 또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숙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백화점아가씨의 경험에서 우러난 말입니다.(샘터 8810 P45)
"당신이 친절한 태도로 사람에게 끼친 유쾌함은, 당신에게 다시 되돌아오며, 가끔 이자까지 붙어서 되돌아오는 법이다." 아담 스미드의 말입니다.(Ibid)
"마음이 푸근하고 밝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5파운드짜리 지폐를 줍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주위에 따뜻한 정을 발산하는 렌즈의 초점과 같아서 그들이 방안에 들어서면 마치 촛불을 하나 더 밝힌 것과 같이 방안이 환해진다." R.I.스티븐슨의 말입니다.(리더스 8803 P86하)
우리가 흔히 열심히 전도를 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경우 전도가 아니라 그 사람을 영영 예수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칭찬할 것을 찾아 자주 칭찬을 해주고 도울 일이 있을 때는 기꺼이 그를 도와주면서 기회를 보아 전도하면 반드시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에 보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27-28)고 하였습니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만 친절하라는 말이 아니라 나를 적대시 하는 사람에게까지도 친절하게 대하라는말씀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신"(눅6:35) 하나님의 친절을 생각하면서 원수와 우리를 저주하고 모욕하는 자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북한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들이 우리를 향하여 온갖 음모와 저주와 욕설을 퍼붓고 도발을 일삼는다 하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저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랑에 의해서 저들은 반드시 변화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 사랑의 마음이 없다는 점입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친절하게 대할 수가 없고, 그들을 가까이 하는 사람조차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을 미워하지 않고 그럴수록 더욱 친절하게, 더욱 인자하게 대하여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온유하고"에서 그 희랍어 동사가 현재형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끊임없이 온유하다"라고 번역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친절이 상대방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모욕을 당한다 할지라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계속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변함이 없으신 것처럼 우리의 친절도 일시적이어서는 안 되고 언제나 한결같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나의 친절을 받아 주지 않는 사람에게 더욱 친절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태양처럼 우리 속에 사랑을 간직하면서 친절을 베풀면 그것은 많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때로는 태양을 가리는 구름처럼 우리의 사랑을 가리는 오해와 질시의 먹구름이 있다 하더라도 낙심치 않고 기다리면 먹구름은 거치고 다시 태양의 자애로운 빛이 비치게 될 것입니다. 햇빛이 비쳐 만물이 싹을 내며, 생명이 약동하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의 빛이 비쳐 나갈 때 거기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낙심치 아니하고 사랑을 간직하고 친절을 베풀면 이 세계가 마침내 변화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랑은 친절한 것입니다. 사랑은 남에게 유익하고 쓸모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를 적대시하며 미워하는 사람에게 까지도 친절하게 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 무거운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친절하게 인사하고 친절하게 대답하고 자상하게 남의 일을 염려해 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한번 싱긋 웃어 주는 일이며,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고 칭찬하는 일이며, 예배 후에 부르는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를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부르는 일입니다. 무표정한 얼굴보다 웃음 띤 얼굴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본받아, 항상 웃음을 머금고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사랑의 마음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늘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 글은 전 안동교회 담임목사였던 유경재 목사님의 설교 '사랑은 친절합니다' 를 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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