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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50:1] 내가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_박동진목사

코이네 2021. 4. 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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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

150:1-6

박동진 목사

 

 

드디어 시편 마지막인 150편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시편의 말씀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찬양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입니다. 우리의 본분을 깨달아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열정이 넘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면 우리는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이 되어갑니다. 우리의 본성이 아름다워지고 거룩해지며, 삶의 재미와 즐거움이 넘치게 되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내게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져서 더 멋지고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43:2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147:1).

 

찬양은 음악적인 소질과 재능을 타고 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남녀노소를 말론하고 누구든지 찬양을 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찬송가를 펴들고 불러보자든가, 시편을 큰 소리로 곡을 붙여 낭송하자든지, 아니면 의무적으로라도 찬양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윽박지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만난 사람들은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찬양이시기 때문입니다.

 

1. 성도의 찬양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

 

찬양은 거듭난 그리스도인, 즉 구원받아 하 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만이 부를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노래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이것이 찬양의 기초이며 근원이 됩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섭리에 대한 헌신과 고백입니다. 그것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찬양을 부를 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다윗이 고백합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22:3).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성도들의 찬양 중에 거하신 거룩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찬양의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 줄 알았고, 그가 호흡하는 동안 찬양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2. 성도의 모든 삶이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은 말과 입술로만 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농아의 장애인 들이 손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소리 없는 그 찬양을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손뼉을 치면서(47:1), 현악기 와 관악기, 타악기 할 것 없이 모든 악기로 연주하면서(150), 손을 들고서(8:6), 춤을 추면서(149:3), 걸어가면서, 껑충 껑충 뛰면서(삼하 6:16) 찬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쁠 때(5:13)나 슬플 때(1:21), 낙심되고 불안할 때(42:5-6), 가난 중에서(74:21)와 병들었을 때(3:8), 시시때때로 찬양하며(34:1), 날마다(96:2), 일생동안(104: 33), 숨질 때까지(104:33), 자손 대대로(145:4) 그리고 영원부터 영원까지(106:48)찬양하는 것입니다.

찬양한다는 것은 입술로 내는 소리를 넘어서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넘어서서 우리의 삶의 전체로 하는 것입니다. 한 학생이 공부하는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받은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공부하러 간다면 이 학생의 발걸음 소리는 그 자체가 벌써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찬양이 됩니다. 우리가 직장에 갈 때도 돈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나선다면 그 발걸음이 찬양이 됩니다. 찬양은 우리의 생활 가운데 모든 순간순간마다, 머무는 자리마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그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에 두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3:15).

 

3. 찬양할 이유가 있으십니까?

 

할렐루야라는 말은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아무 뜻 없이 습관적으로 부르는 찬양, 자신의 남다른 재능을 뽐내기 위하여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부르는 찬양은 하나의 소리요, 흉내일 뿐이며, 사람 앞에서 자기를 나타내려고 부르는 찬양이란 세상의 가요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찬양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또 온전한 고백이 있어야 온전한 찬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찬양을 부르는 성도의 마음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시편 1502절에 보면, 시편기자는 그가 찬양할 이유를 하나님의 능()하심을 깨닫고 경험하였기에 찬양한다고 말합니다. , 그의 인생여정 길에 언제 어디서 나 함께하신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체험하였기에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삶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찾으셔서 찬양해 보십시다. 저는 예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음을 찬양합니다. 좋은 남편, 부인을 주신 주님을 인하여 찬양할 수도 있겠고, 아직도 생존하시는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생명을 주심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할 수도 있겠습니다. 성도들은 언제나 오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시간 속에 역사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이라는 장소에 얽매이거나, 어제나 내일이라는 시간 속에서 손짓하시지 않으십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실의에 빠진 제자들의 발걸음이 닿는 바로 그 길에서, 그 시간에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심령의 눈을 감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서, 지금 여러 성도님들의 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도와 찬양을 드려서는 안 됩니다. 온갖 아름다운 표현을 다 동원해서 한 편의 시 같은 기도를 드리고 참 멋있었다고 스스로 감동하거나, 성도들이 오늘 기도 정말 멋들어지더라는 칭찬에 만족해하지 마십시오. 아름다운 목소리로 청중을 감동시키며, 음정 박자를 틀림없이 잘 지켰다고 해서 기뻐하지 마십시오. 그로인하여 상()을 타기도 하고, 성도들로 부터 어쩌면 그렇게 찬양을 잘 하느냐! 찬양이 참 좋았다는 식의 인기를 얻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와 찬양을 통해 기뻐하고 만족해야할 대상은 여러분 자신이나 청중들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기도할 이유, 감사할 이유와 찬양할 이유를 주신 하나님 ! 여러분과 저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앞에서 여러분과 저의 감사와 기도와 찬양은 평가받아야 할 것 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백성입니다. 하늘나라의 백성들인 우리가 쓰는 말은 바로 감사와 찬송입니다. 하늘나라의 말은 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입니다. C.S.루이스라는 분이 찬양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찬양이란 찬사나 경의를 표하는 일 외에, 기쁨이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일이고, 우리의 내적 건강이 밖으로 표출되는 소리이며, 자연스럽게 타인에게도 찬양에 동참할 것을 권고 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즐거움을 표현해 주고 완성해 주는 것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성도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표현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곡과 가사를 보면서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사와 곡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사모함이 있어야 합니다. 찬양은 생명 있는 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곧 생명이 더욱 생동감 있게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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