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신앙훈련

[제자훈련] 초대교회에서 배우는 전도 _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2. 6. 2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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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전도

읽을 말씀 : 2:42-47

외울 말씀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7)

 

 

 

1. 무언의 전도

 

하루는 프란시스코(아시시의 프란시스코)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오늘은 마을로 내려가자!”

무엇하시게요, 선생님?” “전도를 해야지!” “, 그럼 가요

선생님과 제자들은 거리에 나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시장통으로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프렌시스 선생님과 제자들을 보고 손을 모으며 가볍게 인사하였습니다. 시장통 사람들은 프렌시스 선생님과 제자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프렌시스 선생님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거리를 돌아 그냥 산으로 올라왔습니다. 제자들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왜 전도하러 가자고 하시더니 거리에 내려가 한마디의 전도도 하지 않고 그냥 오십니까?” 그때 프렌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이미 전도를 하였단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면서 프렌시스에게 되물었습니다. “언제 전도를 하였단 말입니까? 우리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는 걸요!”

그래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았지!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보았고 우리가 예수 믿는 수도원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단다.” “그야 그렇지요. 우리가 수도원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랫마을 사람들 중에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단다. 그러니 우리는 전도를 한 것이다. 말로써 아니라 행동으로 말이야. 만일 우리가 지나다닌 것으로 전도가 안되었다면 아무리 말을 많이 하였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 아니겠니?”

이 말에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 전도는 복음의 통로가 되는 것

 

우리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복음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처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를 쓰는 나라는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통로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도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상식적인 삶을 요구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그 복음에 걸맞은 삶을 보여주지 못하면 그 누구도 복음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3. 초대교회의 모습

 

1) 스스로를 힘썼다(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에 성령이 임재한 후 교회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초대교회는 먼저 사도의 가르침에 충실하였고, 성도가 서로 교제하며 위하고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이는 자신들에게 성령이 역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우선한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르치는 말씀을 자신의 삶속에 적용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서로 간에 진정한 사랑과 화목을 나누기 위한 자기 훈련에 충실했습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훈련이 따르지 않고 단지 입으로 하는 복음의 전도는 좋은 결과를 낳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는 훈련은 완벽한 기준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통해 우리가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변화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믿었더니 이렇게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보여져서 이것이 복음을 말하지 않아도 상대를 설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성령 안에서 훈련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47)

 

2) 함께 살아가는 삶(2:43-46)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으로 훈련된 새로운 삶은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2:44-47)

 

그들은 경제적으로 자유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상대적인 빈곤은 있었습니다. 더 있는 자가 있었으며 더 부족한 자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능력의 차이로 인한 것일 수도 있으며 부모들의 유산의 차이로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에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은 그런 상대적인 경제적인 어려움이 믿음 안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물질의 용도를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분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를 이해하고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은 자신들이 헌신하는 물질에 대해 인색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헌신으로 누군가가 필요를 채운다는 사실에 기쁨을 가졌습니다.

 

또한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의 두 번째 변화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라고 함께 있는 생활이 강조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은 모두에게 소중하며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입니다. 당시에 그리스도인들도 자신들의 생활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경제 활동도 해야 했으며 스스로의 취미 생활도 했을 것입니다. 또 때로는 이해관계를 위해 사교적인 인간관계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변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며 함께 있기를 힘썼다고 말합니다.

함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를 희생하는 등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행동입니다. 초대교회는 서로를 가장 소중한 가치 있는 대상으로 섬겼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생활들이 초대교회에서는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끝으로 초대교회의 변화는 모임의 내용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구체적으로 나누었습니다. 함께 헌신하여 음식을 나누었으며 서로의 마음을 진실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생활을 지키기 위해 환경과 어떠한 유혹이나 고난과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의 생활의 특징을 힘썼다는 말로 대신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를 보면 초대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어떤 헌신이나 열심히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놀라운 결과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3) 구원이 시작되었다(2:47)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 사람들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변화되면 변화된 모습 역시 고스란히 그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변화된 사람에 대해 주변의 사람들은 놀라운 반응을 보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자신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너무나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그들에게 강력하게 도전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흥분되었습니다. 그들의 변화는 단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다는데 있다는 사실을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과 똑같은 생각과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즐겨하던 개인적인 취미와 쾌락을, 그리고 분노와 불평과 생활에 찌들었던 표정들이 기쁨과 가치와 헌신과 사랑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이런 놀라움에 성령이 개입합니다. 결과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복음이 전파되었고, 전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의 통로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명이며 의무이며,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가진 자는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복음의 능력을 생활 속에서 이루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복음을 전하기 원한다면 먼저 우리 자신의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순종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전도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