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신앙훈련

[제자훈련]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_박동진목사

코이네 2022. 10. 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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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읽을 말씀 : 4:35-41

외울 말씀 :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1. 갈릴리 호수에서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갈릴리 호수는 둘레는 약 53km, 남북으로 21km, 동서로 11km이며, 면적은 166km² 가량의 큰 호수이며, 바다라고 부르기도 해서, 성경에도 갈릴리 호수 또는 갈릴리 바다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긴네렛(Kinneret)호수라고 하기도 하고, 게네사렛(Gennesaret)호수, 티베리아스(Tiberias)호수라고도 불렀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밤에 갈릴리 바다를 건너 거라사인 지방으로 향했습니다. 처음 출발했을 때는 잔잔했었는데, 어느 순간 광풍이 몰아치더니 배에 물이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 중 절반이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굳은 어부들이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위기 상황이 되었습니다. 죽음의 공포에 빠진 제자들은 이 때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그런데 그 때 주님은 배의 고물(뒷쪽)에서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난리통에도 배 안에서 주무시는 주님을 깨웠고, 그들은 우리가 죽게 되었다며 외칩니다.

 

2. 광풍으로 요동치는 바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200m 정도 낮고, 주위에는 산들이 에워싸고 있어서 기후의 변화가 심한 곳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나타난 광풍과 같은 바람이 갑자기 몰아치기도 하고, 진정되기도 합니다.

예고 없이 찾아온 광풍, 갑자기 몰아쳐 온 광풍,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는 광풍, 자신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광풍입니다. 이런 광풍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휘몰아쳐 옵니다.

예전 IMF 시대의 경제적 어려움도 우리에게 휘몰아쳐 온 광풍입니다. 사업장이 망하고, 가정이 부셔지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어떻게 하든 살길을 찾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천재지변이나 각종 사고로 피해를 입고, 재물의 피해를 입어 울부짖어야 하는 고통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몰려온 광풍입니다.

나의 하는 일에 형통이 없고 시련이 많습니까? 질병으로 건강을 잃고 절망 속에 빠져 있나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낭패를 당하고 있나요? 나의 잘못도 아닌데 남의 책임을 억울하게 떠안고 있나요? 이런 모든 것이 우리에게 밀려온 광풍입니다.

더 이상 내 힘과 노력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기에 결국은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이럴 때 제자들은 주님을 찾았습니다.

주여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

저 제자들처럼 주님께 호소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는 기도를 하는 것뿐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배의 고물에서 잠을 주무시는 예수님

 

큰 광풍이 몰아쳐 다 죽게 되었을 때 주님은 배 뒷 편에서 베개를 베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위기에서 어떻게 하든 살아나려고 기를 쓰고 있는데, 주님은 이런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잠을 주무십니다.

제자들이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그제서야 그들은 주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쿨쿨 주무시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들은 아마 황당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광풍이 몰아치고 바닷물이 배안에 차오르고 있는데, 이런 난리통에서도 잠잘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을 것이고, 자신들의 처지는 돌아보지 않고 그저 잠만 자고 있는 주님이 미웠을 것입니다. 자기들은 어떻게 하든 살려고 하는데, 주님은 그런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잠만 자고 있는 것이죠. 우리랑 사는 세상이 다른 사람인가? 우리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인가?

그런데 제자들이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예수님이 그 배 안에 계셨습니다. 그들과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은 버려두고 자신만 휙 하니 사라지지 않고, 그 배안에서 제자들이 겪고 있는 그 고난 속에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제자들은 그 고난의 상황에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맛보고 있고, 예수님은 그런 상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어떻게 이런 속에서 잠을 잘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고난의 상황 속에서 평안할 수 있을까? 이런 죽을 것 같은 어려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까?

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4.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제자들은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워서 따집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이렇게 노력하는데 주님은 왜 이런 우리 사정을 몰라주십니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잠이나 자고 있고, 우리를 돌보아주지 않으십니까?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는 따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그러면 그럴 때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우왕좌왕 하면서 함께 이제 죽었구나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넋놓고 있어야 하나? 그건 아니겠죠. 제자들은 왜 우리를 돌보아주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좀 알아서 척척척 도와주시지 않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것이죠? 왜요? 주님은 능히 돌보아주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알면서 이런 상황에서 먼저 예수님을 찾지 않은 것이죠? 우리 힘으로 해볼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일까요?

아닐 겁니다. 그 땐 예수님이 그저 생각나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배에 함께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 죽을 때가 되어서야 예수님이 생각났고, 예수님을 찾았는데, 보니 배 후미에서 주무시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본 제자들은 아마 마음이 편안해졌을 것입니다. 우린 죽을 것 같은데 주님은 주무시는구나. 광풍도 별거 아니구나. 비로소 살았다 싶었을 것입니다.

 

잠에서 깬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바람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바다에게 명령합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주님의 명령에 바람도 바다도 순종합니다. 그리고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일 듯이 달려들던 광풍, 그 바람 앞에 등불 같던 그들에게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5. 그가 누구이기에

 

배에 있던 제자들은 얼어붙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죠. 그들은 묻습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경험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두려웠다는 말은 경외심이 가득하게 되어 그 앞에서 아주 조심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경험으로 제자들은 새로운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람과 바다도 다 예수님께 순종하더라.

우리 인생에도 제자들이 탄 배가 겪었던 것과 같은 예기치 않는 고난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 힘으론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 그런 속에 무기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전혀 관심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죽어 가는데 주님은 잠을 주무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잠에서 깨어나시며, 손수 바람과 바다를 향해 명령하시며, 모든 것을 잠잠케 만듭니다.

또한 고난은 우리에게 새로운 믿음을 갖게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찾아서 왜 우리를 돌보지 않느냐고 불평하면서도 충분히 돌보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방식일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상상 이상의 일을 하십니다. 바람을 향해 명령합니다. 바다를 향해 명령합니다. 그러자 바람과 바다가 순종합니다.

 

도대체 주님은 ..”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주님은 정말 놀라운 분입니다. 많이 경험할수록 더 새로운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경험이 더 많이 쌓일수록 우리는 더 큰 믿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라고 꾸짖으셨지만 동시에 다시 이런 상황에서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믿음의 체험을 주신 것입니다.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