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신앙훈련

[제자훈련] 죽은 자의 간절한 소원 _ 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2. 11. 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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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간절한 소원

읽을 말씀 : 16:19-31

외울 말씀 : 눅 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것 중 사람의 실명이 나오는 비유가 있습니다. 바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부자의 이름은 없고, ‘나사로라는 너무 살기 힘들어서 부자의 문 앞에서 죽은 거지의 이름이 실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천국의 생명책에 나사로는 있지만 부자는 없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나사로는 히브리어 엘리에셀에서 온 이름으로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그는 너무 가난하고, 병들어서 자신의 삶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병들고 지친 몸으로 부잣집 대문 앞에 버려져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거지신세입니다.

부자는 자색옷과 고운 베웃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너무나 대조적으로 살았던 두 사람. 그런데 공평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둘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고 나니 되려 그 처지가 바뀌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음부에 들어가 불곷 가운데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부자가 간 곳 음부에 대한 해설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냥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옥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음부에서 고통받던 부자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를 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간절하게 부탁합니다.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자신의 혀에 발라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구렁텅이가 있어서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탐욕에 물들어 사는 바리새인들을 교훈하기 위해 만들어낸 비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죽은 자 좀 더 정확하게 하면 죽어 지옥에 떨어진 자가 갖는 소원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손가락 끝의 물 한 방울을 주소서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었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며, 사람은 때가 되면 죽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후에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죠.

어떤 세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준비한 낙원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받는 곳이 있고, 또 하나는 불꽃 구덩이에서 하나님의 진노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음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낙원에 나사로가 갈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음부에 왜 부자가 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25절에 아브라함이 하는 말을 보면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천국은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이 가고, 지옥은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이 가서 심판받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을 새번역 성경으로 봅시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알 듯 모를 듯 ..뭔가 뜻이 많이 함축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내용을 보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부자가 무엇이라고 부탁합니까? 죽어 지옥에 가서 고통받는 이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바로 손가락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입니다. 부자의 이 부탁에 아브라함은 네가 한 일을 되돌아보아라.’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매일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으며 호사를 누리며 살아가던 부자. 그런데 그의 상 아래에 다 죽어가는 거지가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근근이 연명합니다. 이 부자는 그 때 이 거지에게 먹을 떡 하나 주었는가?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몸부림치던 부자는 물 한 방울을 소원합니다. 그리고 이 소원을 말할 때 아브라함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부자는 이 세상이 아닌 지옥의 고통 중에서 긍휼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5:7).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불쌍히 살았던 나사로를 긍휼히 여겨 낙원으로 이끌어주셨습니다. 남을 불쌍히 여길 힘이 있으면서도 긍휼히 여길 줄 몰랐던 부자를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그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긍휼을 베풀줄 몰랐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처절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지금 가진 것이 많이 호의호식하며 살아가고 있더라도 남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면 사실은 지옥의 불구덩이를 살아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2.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물 한 방울 달라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자 부자는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달라고 소원합니다. 이것을 보면 부자는 그래도 가족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가족만이라도 이곳에 오게 하고 싶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부자가 다시 말합니다.

아닙니다. 아브라함 조상님,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나서 그들에게로 가야만,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은 아주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어 자신의 형제들에게 증거하게 해 달라는 죽은 자의 간절한 소원도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부자의 말을 다시 살펴보면 그는 아직도 왜 자신이 이 고통당하는 음부에 와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모세와 예언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아브라함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그가 이렇게 지옥에 떨어지게 된 것은 나사로와 같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진단한 것입니다.

그런 부자를 향해 아브라함이 단언합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말이 더 옳은 것 같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보아야 믿을 수 있다.”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재앙을 가장 많이 체험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마 모세 때 이집트의 왕 바로일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기적과 재앙을 몸소 체험하고, 또 그 때문에 그 사랑하는 장자까지 죽은 아픔을 경험했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거나 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굴복하지도 복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못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던 나사로를 살렸습니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제사장과 헤롯 일당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나사로까지 죽이려 모의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찮게 생각하는 태도, 그리고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속적인 태도, 그래서 하나님을 말씀을 거부하고 거역하는 완고한 마음, 죄인의 심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3. 죽은 자의 소원

 

부자는 죽어 지옥에서 두 가지의 간절한 소원을 가졌지만 그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죽어서는 물 한 방울의 소원조차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부자가 가졌던 물 한 방울의 소원,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소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와 하나님이 내미는 손길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로를 품에 안았습니다.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다면 우리도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고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합니다. 돌 같이 단단한 우리 마음이 깨어질 때까지 들어야 합니다. 들어서 믿는 자가 되고, 들어서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을 때 이렇게 해야 합니다. 죽으면 늦습니다. 죽은 자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