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신앙훈련

[제자훈련]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 _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3. 1. 4. 19:56
>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

읽을 말씀 : 5:17-28

외울 말씀 : 단5:25 ~28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바벨론은 느부갓네살(B.C.605-562)에 이어 에윌므로닥(562-560)이 왕이 되었고, 다음에는 네르갈사레셀(560-556), 그 다음에는 라바시말둑(556), 다음에는 나보니두스(556-539)로 이어집니다. 나보니두스왕은 아라비아의 테마를 정복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고, 자기 아들 벨사살에게 섭정왕으로 지명하여 바벨론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런대 벨사살 왕은 정사는 제대로 돌보지 않고 향락에 빠집니다. 당시 바벨론 성은 메대 왕 다리오에 의해 포위되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은 때였습니다. 그런 때에 큰 잔치를 베풀어 1천명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정신 나간 사람인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하루는 예루살렘 성전에게 가져온 성물들을 연회의 도구로 사용하며, 하나님을 욕보입니다. 그러자 놀라운 현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5:5)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그 때에'라는 말은 벨사살 왕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을 때를 말합니다. 왕이 귀인 1천명을 초청하여 깊은 연락에 취해있을 때를 말합니다.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을 써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일로 왕의 즐기던 빛이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혔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인생

 

벨사살왕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자신은 무소불위의 권세를 가졌으며, 그 권세로 천하를 호령하며 사는 존재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손가락 때문에 부들부들 떨고 마는 보잘 것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두려움에 떨던 왕은 소리를 지릅니다. “누구든지 이 말의 뜻을 해석하기만 하면 셋째 치리자를 삼겠다고 외칩니다. 바벨론의 술사와 점쟁이와 박사들을 불러 들여 글을 해석하게 했습니다.

그 벽에 쓰여진 글씨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인데, 아람어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든지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바벨론 박사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글이 읽혀졌다고 그 의미를 아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 왕도 박사들도 그 글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도무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쓰신 것이라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그들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벨사살 왕은 크게 번민합니다. 신의 계시가 벽에 적혀 있는데, 그 뜻을 알 수가 없어 너무 답답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뜻을 제대로 해석하는 자에게 세 가지 특권을 주겠다고 합니다. 먼저 자주 옷을 입히겠다고 합니다. 자주 색깔은 왕을 나타내는 색깔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왕족의 대우를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금 사슬을 그 목에 드리운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왕이 하사한 사람만이 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셋째 치리자를 삼겠다는 것입니다. 돈과 권력을 아낌없이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한 드라마에서 재벌급의 재력가가 이런 말을 합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제일 쉬워돈과 권력이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가 그렇게 믿고 있던 돈과 권력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돈과 권력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던 것입니다.

어찌 어두움에 속한 자가 빛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땅에 속한 자가 하늘의 일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육적인 인간이 신령한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신비함을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2. 다니엘의 직언

 

이때 태후(太后)가 다니엘을 소개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태후는 느부갓네살 왕의 왕비인지 벨사살 왕의 모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녀가 소년 때에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다니엘을 상세히 아는 것으로 보아 벨사살의 어머니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녀는 다니엘을 가리켜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명철(明哲)과 총명(聰明)과 지혜(智慧)가 신들의 지혜와 같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이 있을 때부터 총애를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어떨까?’ 불신자들이 나를 볼 때 어떤 평가를 할 수 있겠습니까? 후한 점수를 줄만한 신앙의 인격자로 다듬어졌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조롱과 멸시와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을까요?

 

젊은 왕 벨사살은 이제 나이 70이 넘어버린 다니엘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쾌락만 추구하다보니 신령한 사람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바벨론의 역사에 중심이 되어버린 다니엘을 모르는 벨사살 왕은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벨사살 왕은 태후의 조언대로 다니엘을 불러드렸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도 "네가 이 글을 해석하기만 하면 너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삼고 후한 상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전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렇듯 다니엘은 물질과 사람 앞에 하나님 앞에 담대하였습니다. 그런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죄악부터 시작하여 벨사살 왕의 죄악까지 하나하나 들추어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이 그 왕위와 영광을 빼앗았다고 했습니다.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들짐승처럼 되었었다고 과거의 일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을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않는 벨사살 왕의 죄는 더 크다는 것입니다.

22절에 '이것을 다 알고도'라는 말은 도무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모습임을 잘 드러내는 말입니다.

벨사살은 하나님에 대해 선조들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하나님을 거역하고, 성전에서 거룩하게 쓰여야 할 성물 들을 자신의 향락을 위해 함부로 사용하였고, 하나님을 무시하였습니다. 이런 왕을 하나님이 가만둘 수 없어서 이 손가락이 나와 이 글을 썼다고 말합니다.

다니엘의 이런 태도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사실이라 할지라도 어찌 왕에게 이렇게 직언을 서슴지 않을까? 당장이라도 왕이 진노해서 다니엘의 목을 칠지 모를 것이기에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3.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다니엘은 벽에 쓰인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을 해석해줍니다.

'메네'는 계수한다는 뜻입니다. 메네라는 말을 반복한 것은 하나님이 세어보고 또 세어보았고, 이제는 다 세어서 하나님의 뜻을 확정했다는 것입니다.

'데겔'은 저울로 달아본다는 뜻입니다. 저울에 달아보니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달아보니 부족함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울은 수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도 너무나 정확하게 시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바르신''''그리고'라는 말이고, '바르신''베레스'의 복수인데 나뉘어졌다는 것입니다. ‘베레스는 나뉘어지게 하다, 조각나게 하다는 뜻입니다.

벨사살 왕은 하나님의 저울에 달렸는데 그는 알곡이 없는 쭉정이였습니다. 비 없는 구름이었습니다. 물 없는 웅덩이였습니다. 열매 없는 가을 나무와도 같았습니다.

사무엘상 23절에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무엇하고 있느냐고 따집니다.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벨사살을 판단했듯이 지금도 우리를 달아보고 있습니다.

그날 밤 벨사살 왕은 하나님이 계시대로 대적들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강대국 바벨론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의 연합군에게 멸망당했습니다.

 

4. 교만한 인생의 말로

 

성경에 하나님께서 벨사살왕에게처럼 자신의 뜻을 명확하게 보이신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벨사살 왕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게 하여 심판을 예고하셨을가요? 당시 권력의 최정점에 있었던 벨사살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잠언에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라고 하며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6:17-19)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리고 거짓과 살인, 악한 마음, 숱한 악행들, 거짓증언, 형제를 이간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서로 다 연결되어 있는 죄악들이며, 그 시작은 교만입니다.

벨사살왕은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 기물을 가지고 와 자신의 유흥 도구로 쓰며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마저 이렇게 무시하는 사람이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교만해지자 그의 자리를 빼앗아 다윗에게 주었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교만하거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분의 능력을 비웃고 조롱할 때 우리는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의 성전을 거룩하게 보전하고 성령의 은혜로 다듬어가야 합니다. 내 몸이라고 내 것으로 여겨 함부로 행하면 우리는 어떠한 질병으로 어떠한 고난과 고통으로 어려움을 당할지 모릅니다. 심지어 언제 우리의 생명을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 앞에 신실하게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겸손히 믿음 안에서 말씀 안에서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