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묵상 44

백 배의 결실을 얻은 이삭 그리고 세 개의 우물

창26장 백배의 결실을 한 이삭과 세 개의 우물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26:12~13) 저는 이삭이 참 좋습니다. 특히 그가 거부가 되었다는 이 표현이 너무 좋습니다. 이삭이 농사를 지었더니 백배의 결실을 하였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가 거부가 되었다.. 저도 좀 그렇게 복을 받아 거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거부'가 된 이삭, 그 말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이삭은 목축업이 가업입니다. 그런데 그가 낯선 땅으로 이주해서 거기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국 땅에서 평소 하지 않았던 농사를 지었다.. 이 부분에서 그가 얼마나 고생하며 ..

코이네 묵상 2016.01.27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

창 26장 그랄지방에 거주하는 이삭 그리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주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난 후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함께 가나안의 남부에 있는 브엘라해로이라는 곳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가뭄이 심해져서 그는 애굽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나님은 이 때 아브라함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며, 내가 지시한 땅 곧 이 땅에 거주하면 내게 너와 함께 하며 네게 복을 주겠으며,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이루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거주하는 그랄 지역으로 옮겨 거기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랄은 위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가나안 지역의 동쪽 해안평야 지대로 지중해의 영향을 받아 비가 많이 내려서 가뭄을 거뜬히 견뎌낼 수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

코이네 묵상 2016.01.26

하나님은 아브람을 넘어 아브라함이 되게 하신다

아브람과 아브라함 묵상말씀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아브람과 아브라함 이름에 '하' 자 하나 더 들어간 차인데 두 단어의 뜻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브람도 고귀한 아버지라는 아주 좋은 뜻을 갖고 있는데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 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

코이네 묵상 2016.01.06

가인에게 하고 싶은 말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아..가인아 가인아... 묵상말씀 : 창세기 4장1-14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황무지를 개간하며 살게 된다. 그러다가 아들을 하나 낳았다. 고생 속에서 낳은 아들 얼마나 기뻤을까?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 "가인"이라 했다. 이름의 뜻은 "내가 아들을 얻었다" 이다. 둘째 아들을 또 낳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벨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 뜻이 "허무하다"란 뜻이다. 두 아들의 이름을 두고 보면 아담과 하와가 살아가는 삶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인간과 허물없이 교제하지 않고 제사라는 통로를 통해 인간과의 끈을 놓지 않으신다. 그런데 이 제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성과 존경이다. 즉 존경심이 제사를 드리는 태도와 정성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아벨은 하나님이 흔쾌히 받으..

코이네 묵상 2015.12.29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비결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비결 벧후 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인 삶을 살아간다. 종말론적이라 함은 지금 주님께서 나를 부를 때 아무 미련 없이, 주저함도 없이 아멘하고 달려가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면처럼 주님께서 "내가 속히 오리라"하실 때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이 응답은 이 넌덜머리 나는 세상, 더이상 살고 싶지 않은 인생 이제 끝장내 주십시오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도다, 주님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하신 것처럼 내 할 일을 다했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는 그런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태도이다. 어떻게 하면 종말론적인 삶을 살..

코이네 묵상 2015.09.22

에바브라, 신앙을 가르친 참된 목회자

에바브라, 바울이 자랑하는 목회자 빌립보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기뻐하라'입니다. 골로새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감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합니다. 골로새 교회를 생각하는데 왜 그리 감사할 것이 많을까요? 골로새 교회는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이 깊었고, 성도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데에는 신실한 믿음의 일꾼 에바브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온전한 믿음 그리고 언행일치의 삶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라를 통해 신앙을 잘 배워갔던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에는 에바브라에 대해 이렇게 소개..

코이네 묵상 2015.08.23

용서하지 않는 것도 죄인가?

묵상말씀 : 마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장에 용서하지 못한 관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도대체 어떤 짓을 했길래 왕에게 1만달란트라는 어마어마한 빚을 지게 됐을까? 하여간 그런 못된 관원이 있었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왕이 감사를 시작해 보니 왕에게 빚진 것이 1만달란트라는 것이다. 놀란 관원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왕은 갑자기 진노를 그치고 그 관원을 용서해버린다. 이유가 없다. 순식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이 사람, 왕궁을 벗어나면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얼굴을 몇 번이나 꼬집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에게 5백 데나리온 빚을 진 사람을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빚을 갚으라고 독촉했고, 그 사람이 돈이 없다..

코이네 묵상 2015.06.11

완벽한 거룩함을 이루기 위한 바울의 기도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무엇일까? 그 답을 골로새서 1:22에서 답을 주고 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주님은 우리가 온전히 거룩해서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주님 앞에 서길 원하시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거룩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 아니라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어떻게? 골1:23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우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된다고 하시니 그..

코이네 묵상 2015.06.04

허식과 위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도

허식과 위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도 믿음으로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드립니다. 우리의 삶속에 깊이 자리잡은 불신앙의 요소들을 회개하오며, 이와같은 자리에서 떠나 오직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기 원하오니 늘 인도해주옵소서. 또한 허식과 위선에서 벗어나기 원합니다. 책임 있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용서하시고 늘 그 품에 안아주시는 주님의 사랑 가운데서 평안과 소망을 갖고 사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다윗의 회개처럼, 요나의 자복처럼 자신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여 새로워지기 원하오니 긍휼히 여기시고 도우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어느 목사님께서 설교를 마치시며 하신 기도 -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코이네 묵상 2015.03.16

교회의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

고전 6: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교회에도 재판이 있다. 교회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하는 재판도 있고, 성도 간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한 재판도 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교회의 재판에 불복하고 그것을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 교회의 재판 결과는 불복하면서도 세상 법정에서의 결과에는 순복한다. 이것이 현재 교회가 처해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성도들이 세상의 비웃음을 산다. 예수쟁이도 똑같다, 또는 더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교회의 재판은 그 권위를 상실했을까?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 판별 받는 이들이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원하는 ..

코이네 묵상 2015.03.12